희망의 문 작품 시리즈에 대한 단상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우리는 이미 ‘야마다 마사히로’가 말하는 ‘희망격차사회’를 앓고 있다. 헬조선과 흙수저 금수저의 논리가 나타나는 이유는 ‘한 번 추락한 중산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중산층으로 복귀하는 꿈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희망격차사회는 단지 누군가는 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꿈을 꿀 수 없는 사회야 말로 지옥보다 더 힘든 사회라는 것이다. 지구촌 여러곳에서 희망을 버린 아픈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희망을 버릴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해본다. 꿈은 사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내가 주인공이다. 각자가 가진 재능을 통한 미래의 변화 계획이 곧 ‘희망’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이상적 미래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나는 내 작품을 통해 희망을 말하려한다.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은 기독교에서는 ‘소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한글로는 ‘바람’이라고 쓴다. 또 잠자지 않는 현실의 ‘꿈’이 ‘희망’이다. 희망은 한 개인의 삶뿐만이 아니라 조직과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까지도 바꿀 수 있다. 칸트 또한 희망을 성명함에 있어 『순수이성비판』에서 "나의 이성의 모든 관심은 다음의 세 가지 물음으로 정리된다"고 말한다. 즉 첫 번째 물음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두 번째 물음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세 번째 물음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이다. 나아가 칸트는 첫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형이상학이,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도덕이, 그리고 세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종교가 대답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칸트도 '희망'을 종교적 관점의 거대한 힘으로 여겼다고 본다.

희망은 어떤 힘이 있는가?

인간에게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두 가지 세상이 존재한다. 현실세계를 힘차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것이 원대할수록 진취적인 마음이 작용한다. 진취적 기상의 에너지인 희망은 이상세계의 자손인 현실세계를 낳는다. 이상에 의해 현실이 나아지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인간이 가야할 길이 이상적 사회라면 이 길을 가기위한 큰 희망은 절대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기원전 497년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3대 시인인 소포클레스는 ‘인류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공황 상태에서 미국을 먹여 살리고 거대한 변혁의 시대를 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3월 4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오직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는 과감하고, 즉각적이고, 필요하다면 비정통적인 방식으로라도 대공황을 이겨낼 것을 약속했다. 그는 희망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였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끈 “100일 계획”의 과감한 경제정책은 2차 세계대전의 승전 때까지 이어지는 번영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제32대 미국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12년의 재임 기간을 기록했다.

희망의 문 시리즈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희망의 문’ 시리즈는 문과 여성을 소재로 한다.

문은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현재와 미래, 현실과 희망의 분기점을 말하는 상징이다. 여성은 희망, 풍요, 기쁨, 기회, 행복의 상징이며 시각적인 측면에서 인류의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 또는 누이를 말한다.

문은 나무문을 기본으로 하며 나무가 가진 생명력을 상징으로 하려한 것이다. 또한 신라의 고찰의 사례를 보듯이 잘 지은 목조주택은 천년을 간다. 나무문은 천년을 이어갈 강인한 생명력을 말하고 있다.

문의 틈으로 보이는 여성과 여성의 뒤 배경이 빈 공간으로 처리된 것은 현실에서 희망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의미이고 빈공간은 희망을 통해 채워갈 현실의 여백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주제로 나타나는 경우는 희망을 잡아야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전통문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현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을 먼저 생각해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추후 다른 형상으로도 표현할 계획이다.

조형적으로는 기하학적 구조를 나타나는 형식을 차용하였다. 피트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을 염두에 두고 문과 여인의 구성을 체계적이고 계획된 위치에 배치하였다. 이는 희망이라는 미래가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한국의 문은 실제로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경우가 많으나 작품의 목적에 맞게 정돈된 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여인의 모습이 일부만 보이게 되는 것은 희망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쌓아가는 성과 같다는 의미이다.

기법은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다. 일부는 극사실적인 표현도 하였으며 나무의 결과 금속의 질감을 최대한 살려서 표현하였다.

작품은 감상자가 자신의 생각을 반영 할 수 있는 생각의 여백을 만들었으며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형상이 보이게 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는 시각적 처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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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e-mail  : na2na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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