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이 있다면 이상향만 봐라.

욕을 자주하는 사람을 위한 기원.
꿈과 희망을 담은 유토피아를 원함은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일 것이다. 이 유토피아로 가는 방법은 당연히 유토피아로 향해있어야 한다. 생각도 행동도 그래야함은 너무나 당연함일 것이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원하면서 반대의 상황 안에 갇혀있다. 소셜네트워크 안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수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대부분 좋은 글들이지만 매우 비관적이며 비판적인 글을 매일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들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그런 글을 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묘하다. 유토피아는 건설하는 것이지 이미 만들어져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창의적인 사고로 새로운 도약의 방법과 실천이 따라야하는데 현실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의 허물을 탓하느라고 세월을 다 보낸다. 그 사고에 함몰되어있는 사람은 현재가 유토피아라는 설정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저 현실 일뿐이다. 이상향을 원함은 자신이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야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욕하기만 해서는 답을 얻을 수 없다.
데카르트와 뉴턴이후 자연법칙을 판단함에 있어 철학적 사고는 더 이상 가치를 가질 수 없었다. 계몽철학자들이 주장한 것은 철학적 자연법칙의 이해가 아닌 자율적인 인간의 이성만이 진실한 법칙을 탐구할 수 있고 이성적 비판으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학문적 인식이 가져야할 논리적 구조를 분석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비판적 사고는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이상향이 있는데 그곳을 가기위한 기존의 방법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므로 논리적인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잘못된 점을 개선하여 새로운 지향점을 얻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칸트는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자유시장경제를 만들었다. 그가 말하는 자유시장경제와 민주공화국이라는 형식은 ‘폭력과 전쟁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상향을 위한 칸트의 방법 제시도 최근 마이클 샌덜에 의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라는 공공철학이 가진 문제점을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모든 철학과 비판적 사고의 동인은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이상향을 원한다면 이상향에 더 몰두해야한다. 좋은 것을 보려하고 좋은 것을 따라하며 더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한 사고의 증폭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단지 욕하는 것으로는 순간 후련해질뿐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꿈을 갖자. 그리고 꿈을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자. 이상향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자. 이상향의 집을.
지금 낡고 불편한 집에 대한 불만만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에 새로 지을 집에 어떤 구조를 만들고 어떤 색을 칠하며 어떤 인테리어를 할지를 생각하자. 소소한 소품까지 정밀하게 생각하자. 그리고 빠트리지 말아야할 고마운 마음을 만들고 감사한 마음을 만들고 내가 먼저 하는 마음을 만들자. 최선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