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문 작품 시리즈에 대한 단상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우리는 이미 ‘야마다 마사히로’가 말하는 ‘희망격차사회’를 앓고 있다. 헬조선과 흙수저 금수저의 논리가 나타나는 이유는 ‘한 번 추락한 중산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중산층으로 복귀하는 꿈 자체를 포기하게 되


이상향이 있다면 이상향만 봐라.
욕을 자주하는 사람을 위한 기원. 꿈과 희망을 담은 유토피아를 원함은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일 것이다. 이 유토피아로 가는 방법은 당연히 유토피아로 향해있어야 한다. 생각도 행동도 그래야함은 너무나 당연함일 것이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원하면서 반대의 상황 안에 갇혀있다. 소셜네트워크 안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수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대부분 좋은 글들이지만 매우 비관적이며 비판적인 글을 매일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들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그런 글을 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묘하다. 유토피아는 건설하는 것이지 이미 만들어져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창의적인 사고로 새로운 도약의 방법과 실천이 따라야하는데 현실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의 허물을 탓하느라고 세월을 다 보낸다. 그 사고에 함몰되어있는 사람

